카테고리 없음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 노래, 음악, 아티스트

page1004 2024. 1. 13. 13:46

 

 

 

담담한 표정으로 슬픔을 쥐어삼킨 그녀의 블루스

'I'm a fool to want you'.
수년 전, 국내 모 CF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이 곡 하나로 빌리 홀리데이는 재즈가수의 대명사가 됐다. 물론 빌리 홀리데이에게는 더 많은 노래가 있다. 하지만 이 곡만큼 아름답게, 심지어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담담하게 사랑의 슬픔을 노래한 곡도 드물다. 무언가에 잔뜩 긴장된 것 같으면서도 이내 체념한 듯한 읊조림, 특유의 갈라질 듯 젖어 있는 목소리는 '흑인과 재즈'라는 이미지와 그 분위기를 맛보기에 대단히 좋은 텍스트였다. 가사의 속내를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지극히 고단한 감성이 느껴지는 이 노래는 피곤함 마저 잊고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메마른 정서를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연인처럼 속삭이기보다는 인생의 선배로서 들려주는 따듯한 위안처럼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상대적으로 여성 재즈싱어의 거성들인 '사라 본', '엘라 피츠제랄드'에 비해서 빌리 홀리데이의 인기가 높은 것은 첫째로 재즈라는 이미지에 대한 사람들의 막연한 상상 때문이었다. 불행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그녀의 삶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녀의 노래는 그것을 충분히 대변하고 있을뿐더러 나아가 흑인의 애환을 대변하는 텍스트로 여겨지면서 재즈의 본질과 연동하게 되었던 것이다. 확실히 빌리 홀리데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재즈와 닮아있는 것 같다. 삶을 관통하는 그 어두운 곡조가 '재즈의 무드(mood)'에 바로미터가 되었다면 그것이 바로 재즈라는 음악의 아이러니일지도 모른다.

오늘 만화에서는 빌리 홀리데이가 어떻게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https://www.youtube.com/watch?v=zcye3iJgN9Q

 

 

 

빌리 홀리데이의 첫 독집 음반은 1936년에 취입된 [빌리 홀리데이 스토리/CBS 컬럼비아]였다. 즉, 그녀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시기는 30년대 중반부터였다. 그런데도 그녀의 창법이나 노래 스타일은 한참이나 옛것에 머물러 있었다. 1927년에 상영된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 이후 '재즈 싱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유행되기 시작했다면 빌리 홀리데이는 그 이전까지의 블루스 가수로서의 역할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악기를 연주하듯 목소리만으로 즉흥적인 솔로를 펼치던 재즈싱어로서의 혁신성 보다는 블루스의 원초적인 정서를 재즈 사운드에 보태는 가수였던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까지나 유지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 들은 베시 스미스나 루이 암스트롱을 빼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음악을 배운 적이 없어요. 사람들은 내 노래 스타일이 어디서부터 발전된 것이냐고 묻는데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요? 나는 단지 내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하고 그렇게 할 때 사람들도 뭔가를 느끼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때로는 스스로 지나치게 감성적인게 아닐까 고민할 정도죠" 빌리 홀리데이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 자신이 말했듯,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던 빌리 홀리데이의 음악적인 해석은 대부분 천부적인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노래는 지나칠 정도로 감성적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의 표현이 아니었다면 빌리 홀리데이의 존재감은 쉽게 무너지고 만다. 블루스와 재즈의 상관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블루스와 소울의 영역이 지배했던 그녀의 스타일만으로 재즈싱어로서의 역할이 적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빌리 홀리데이가 '레이디데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전해진다.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는 지난 회(최고의 색소폰 연주자, 레스터 영)에 다루었던 레스터 영(Lester Young)이 붙여주었다는 설, 이때 빌리 홀리데이는 '프레지던트 레스터' 라는 애칭을 레스터 영에게 답례했다고 한다. 또 한가지는 클럽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절대 허리를 굽혀 인사하지 않는 도도한 모습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여기에 항상 머리에 치자꽃 한 송이를 꽂고 출연했다는 그녀의 모습을 머릿속에 더해본다면 그 어떤 것이 사실이든, 모두가 그녀의 이미지를 반영한 것인 만큼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추측해 보건데 노래하는 빌리 홀리데이는 거칠었던 삶과는 다르게 소위 '요조숙녀' 가수였던 것이다.

그녀의 대표곡 중 하나인 '이상한 과일(Strange Fruit, 1939)'은 미국 남부의 백인 폭도들에게 살해되어 나뭇가지에 매달렸던 가련한 흑인을 비유한 노래였다. 억눌린 분노와 슬픔을 담고 있는 이 노래와 더불어 루이스 앨런의 시를 노래한 'God bless the child(1941)' 역시 재즈의 저항주의를 메시지로 담아낸 곡이었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대를 살아간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들은 그 자체로 '흑인과 재즈의 역사'를 반추하는 한 편의 서사시라 할 수 있다.

1959년 7월 17일. 
44세의 나이로 사망한 그녀의 진료 기록에는 '마약중독 말기증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몇 번의 불행했던 결혼을 거치며 여자로서 누릴 수 있는 평범한 결혼생활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빌리 홀리데이는 최후의 명연으로 전해지는 작품 [Lady In Satin](1958) 을 뒤로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특히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는 그의 깊은 감정과 특유의 블루스 스타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고독, 사랑, 상실, 그리고 삶의 어려움을 다루는 데에 뛰어나며, 그 특유의 힘과 감성은 많은 청취자들에게 감명을 남깁니다.

특히 "스트레인지 프루트"와 "글로리 어드레이" 같은 대표곡들은 빌리 홀리데이의 예술적 업적을 대표하는 곡들 중 하나로 꼽히며, 그의 훌륭한 보컬 테크닉과 블루스 음악에서 나오는 따뜻한 감정이 돋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