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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 스윙, 음악, 재즈

by page1004 2024. 1. 11.

 

 

 

해학과 미학의 재즈 캐릭터 '디지 길레스피'

언제였을까? 기억의 원근감이 쉽게 잡히지는 않지만 디지 길레스피의 얼굴은 내가 그의 이름을 정확히 알기 훨씬 이전부터 낯이 익었다. 어느 카페의 벽걸이 액자에서 봤던 것인지, 혹은 언젠가 들렀던 레코드 상점에서 본 사진이었을지 모른다. 마치 장마철 개구리처럼 양 볼다구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채 힘주어 나팔을 불고 있는 얼굴. 아니, 나팔을 분다기보다 풍선에 바람을 넣고 있는 듯한 괴상한 모습이었기에 쉽게 지워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그의 얼굴은 눈 코 입의 생김새가 아니라 트럼펫에 풍선 두 개를 붙인 이미지로 요약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PiKHAEcEvM

 

 

 

본명은 존 벅스 길레스피(John Birks Gillespie)로, 1917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출생하였다. 1940년대 단짝 친구였던 알토 색소폰 주자 찰리 파커(Charlie Parker),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와 함께 모던재즈의 기반이 된 비밥(Bebop)을 창시한 대표적 3인방으로 꼽힌다.

그가 '디지(Dizzy)'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유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짜릿한 트럼펫 연주 때문이라고 한다. 확실히 예측불허의 튀는 고음역(하이 노트)과 빠른 애들립, 뮤트(약음기)를 이용한 짜릿한 느낌의 금관소리는 디지 길레스피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었다.

또한, 무대에서 벌이는 재치 있고 익살스런 행동으로도 유명했는데 특히 트럼펫을 불 때 눈 밑까지 부어오르는 볼과 위로 구부러진 트럼펫, 그리고 평생을 통해 구사한 활력 넘치는 사운드로 만인의 사랑을 받았다.

트럼펫터로서의 위상은 가장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1920~30년대 초기 재즈의 역사를 주도했던 트럼펫터는 단연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이었으며, 이후 1930년대 중 후기의 트럼펫 스타는 로이 엘드리지(Roy Eldridge)였다. 40년대 이후로는 디지 길레스피가 그 바통을 이어받아 재즈 트럼펫의 상위계보를 형성하고 있다. 디지 길레스피는 스윙에서 벗어나 밥(Bop)스타일의 연주를 개척했지만 30년대 초기에는 로이 엘드리지의 방식과 거의 흡사한 연주를 펼쳤다. 암스트롱 계파로 디지 길레스피에 비해 6년쯤 나이가 많았던 로이 엘드리지는 '리틀재즈'라 불리며 1930년대 중반 일약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다양한 재즈 오케스트라가 활동을 펼쳤던 그 시기에 디지 길레스피는 테디 힐(Teddy Hill) 악단에서 떠오르는 트럼펫터로, 로이 엘드리지는 상대적 라이벌 관계였던 플레처 헨더슨(Fletcher Henderson) 악단의 간판스타였던 것이다. 때문에 길레스피와 엘드리지는 곧잘 비교의 대상이 되었지만, 레코드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확실히 디지 길레스피의 연주가 엘드리지의 방식을 흉내 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엘드리지가 줄곧 스윙에 정착한 것에 비해 길레스피는 비밥 스타일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 나아간 뮤지션이다.

디지 길레스피가 엘드리지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시점 역시 비밥의 기운이 싹트던 1940년에 이르면서부터로, 리듬이나 프레이즈는 매우 복잡해졌고 하모니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후 디지 길레스피의 아이디어는 항상 신선한 것이었는데, 예를 들면 솔로 도중 뜻밖의 고음역, 또는 고의적으로 키를 바꿔 불안정한 효과를 내는 등의 독특한 프레이즈가 그것이다. 경쾌한 업 템포의 빠른 전개에 있어서도 선명한 내용을 담아내어 감상의 즐거움을 준다.

디지 길레스피는 흔히 '밥의 효시'라는 아성에 가려 기타 장르에 대한 업적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평가되는 면이 있지만 그는 비밥에서 라틴, 퓨전재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구사하며 재즈의 시류를 주도했던 인물이었다. 특히 아프로큐반 재즈를 중심으로 한 라틴재즈에 대한 열정과 창의적인 시도들은 반드시 살펴봐야 할 만큼 중요하게 평가되는 부분이다.

뛰어난 작곡가로서도 명곡을 많이 남겼다. 대표적으로는 'Manteca', 'A Night In Tunisia', 'Bebop', 'Salt Peanuts', 'Woodyn' You', 'Groovin' High' 'Con Alma'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