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스윙의 왕, 베니 굿맨과 글렌 밀러
지난 몇 회에 걸쳐 스윙재즈를 소개하면서 해당 인물마다 '스윙의 왕'이라는 표현을 썼으니 누군가는 '모두가 다 왕이면 누가 신하냐"고 따져 물어올 만도 하다. 그러나 어떡하랴. 스윙시대의 황금기를 이끈 그 많은 왕들 중에서 또 다시 단 한사람을 꼽아야한다면 그는 바로 베니 굿맨(1909~1986)이다. 혹은 그의 적자(適者)로 글렌 밀러(1909~1944)를 꼽을 수도 있겠다. 이 두 사람은 당대의 라이벌 관계이자 백인 지휘자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는 흑인 지휘자였던 듀크 엘링턴이나 카운트 베이시가 획득한 음악적 성과와는 별개의 의미로서, 간단히 말해 대중적인 인기도 면에서 최고였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살펴볼만한 구석이 있다. 즉, 1930년대의 스윙이 전 세계적인 유행을 불러올 수 있었던 것은 백인지휘자, 백인의 스타가 탄생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등장에 힘입은 미국인들은 재즈가 더 이상 아프로 아메리칸의 전유물이 아닌 미국의 음악이라고 내세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화적 우월감이란 선동될수록 포장되고 간혹 그 진실에 관해 반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40년대 이후 촌철살인 테크닉으로 중무장한 흑인 비밥 뮤지션들의 등장은 백인재즈가 누린 영예에 대한 역반응이었는지 모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Fgsw7hlocTE
스윙시대의 또 다른 의미들
피부색 이야기를 꺼냈으니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가자면, 확실히 베니 굿맨이 자신의 악단에 흑인을 고용한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1930년대라면 루이 암스트롱, 듀크 엘링턴 등 몇몇 흑인스타가 존재하기는 했었지만 여전히 흑인 사회에서는 "길에서 빵을 주는 백인이 있으면 그를 따라가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궁핍한 삶과 차별은 변하지 않던 시기였다. 그러나 스윙시대에 와서는 백인 악단들이 차츰 흑인 솔로 연주자들을 기용하게 되면서 적어도 음악에서 만큼은 흑과 백이 동등하다는 인식을 쌓아가게 되었다. 백인 악단은 백인들로만, 흑인 악단은 흑인들로만 구성되었던 관습이 이렇게 허물어지면서 음악 역시 발전적인 모습으로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스윙이 백인재즈의 시대를 열 수 있었던 이유도 짚어볼 만 하다. 원로 색소포니스트 김수열 선생은 재즈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흑인의 체질적인 리듬감을 흉내 내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들만이 갖고 있는 설명할 수 없는 그루브감을 결코 완전히 가져올 수는 없었다는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백인들 역시 자신들의 불리함을 상쇄시킬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집단 앙상블이 득세했던 빅밴드 스윙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그전까지 백인의 재즈라는 것은 흑인의 것을 모방하는 '딕시랜드 스타일(Dixieland jazz)' 정도가 전부였다. 초기 재즈의 하나인 딕시랜드 재즈는 본질적으로 '컨트리'에 가까운 것으로, 2/4박자의 스피드감이 강조된 형태였다. 말하자면 블루스의 냄새가 상대적으로 덜한 것이었다. 그런데 스윙은 댄스홀에서 유행했다는 이미지 때문에 대개는 빠른 비트의 음악으로만 인식되고 있지만 초기에는 4박자 리듬의 명맥을 이어갔으며, 대부분 여유로운 슬로우 템포의 곡이었다. 이랬던 스윙을 좀 더 '경쾌한 파퓰러 뮤직'으로 확장시킨 것은 확실히 백인다운 발상이었다.
음악적으로 스윙시대가 남긴 또 하나의 의미라면 작곡과 편곡에 대한 관심이 대두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최소 15명 이상의 빅 밴드(Big Band)가 주류를 이루었던 스윙악단들은 집단 앙상블에 걸 맞는 선곡과 편곡에 신경을 써야했다. 이는 단순히 여럿이 모여 사운드의 효력을 발휘한다는 발상에 머물지 않고 악기마다의 역할과 그 효과적인 운영에 관한 고민이었던 것이다.
* Swing의 Off-Beat
'흔들리다'라는 의미를 지닌 스윙(Swing)의 특징은 율동감이다. 이러한 율동 감을 위해서 악보 상으로 드러나지 않는 싱커페이션(syncopation)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예를 들면 4박자를 셀 때 1, 2, 3, 4의 나열식이 아니라 1 & 2 & 3 & 4 하면서 가려진 'And(그리고)'에 악센트를 줌으로서 리듬감을 유도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숨겨진 'and'의 역할을 'Off-Beat'라고 부른다.